작년 하노이에 거주할 때 약 2주간의 휴가를 얻어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여행사를 통해 비행기표만 구해서 간 자유여행이였습니다. 하노이에서 취리히로 가는 직항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방콕을 경유해서 스위스에 가야만 했습니다. 오늘은 이 방콕을 경유하면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한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도 좀 알아둘 필요는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얼마전에 히티틀러('히티틀러의 여행이야기' 블로그 운영자)님이 방콕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에 글을 써보려구요.
<스위스 여행기>
스위스로 갈 때도 방콕을 경유했고 스위스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돌아올 때도 타이항공을 이용해 방콕을 경유했습니다. 스위스로 갈 때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통과해서 스위스로 갔는데요. 방콕에서 경유할 때 검색대를 다시 지나더라구요. 수화물로 옮기지 않았던 짐부터 금속탐지기까지 통과를 했죠.
사실 이 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방콕 경유지>
스위스에서 여행하면서 기념품을 챙겨야 했어요. 가족들과 직원들에게 줄 선물꾸러미를 구입하려고 생각했죠. 그래도 스위스까지 가서 냉장고자석이나 엽서 이런거 사다주기 싫어서 스위스의 명물인 맥가이버칼 작은 것을 사주려고 마음 먹었었습니다.
스위스 여행 다니면서 그런 기념품 파는 곳을 아주아주 많이 봤었는데 스위스의 높은 물가에 겁을 먹었던 탓에 좀 더 싼데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출국하는 날짜가 와버리고 말았어요.
다른 기념품들은 그래도 좀 챙겼는데 맥가이버칼은 출국 당일까지 사지 못했죠. 융프라우요흐에 갔을 때 구입했던 맥가이버칼 3개는 있었는데 이것은 좀 귀하신 분들께 드릴려고 했던 것이였고 직장 동료들이나 동생들에게 줄만한 아주 작은 것은 보통 가게에서 12스위스프랑(14,000원)정도 였습니다. 저는 분명 공항면세점에 가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위스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
그래서 취리히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하고 면세점에서 기념품가게를 찾아다니게 되었어요. 다행히 빅토리녹스(VICTORINOX)가 있더라구요. 거기서 기념품으로 줄 만한 아담한 크기와 적정한 가격의 것을 발견했어요. 물론 일반 가게보다 완전 싸지는 않지만 혹시나 못 구할까봐 걱정했던 차라 완전 좋았어요. 그 곳에서 10개정도를 샀어요. 점원이 친절하게 가죽케이스도 주시고 빅토리녹스 가방도 몇 개 챙겨줘서 완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완전 득템했다며 '좋아좋아'하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11시간동안 경유지였던 방콕으로 날아갔습니다.
현지시간 오전 4시.
이코노미석의 고문을 호되게 당했지만 이제 몇 시간만 더 가면 하노이에 있는 집에 도착할 것이란 기대가 피곤을 견디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앞을 가로막은 공항검색대가 보이자마자 전 순간적으로 내 손에 들린 맥가이버칼 10개가 떠올랐습니다. 분명 이것은 공항검색대에 통과되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분명했지만 난 분명 취리히 공항 면세점에서 이것을 샀으니 이해를 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 짐이 X-RAY를 통과하자마자 제 짐은 탈탈 털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귀신같이 면세점에서 산 그 귀한 맥가이버칼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검색대원은 이 물건은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없다라고 우리에게 선언하듯 말했습니다.
전 곧바로 항소.. 아니 항의를 했습니다.
제가 이것은 Duty Free shop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강하게 저항하자 공항검색대 책임자가 나를 면담했습니다. 그리고 전 그 사람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면세점에서 샀다는 증거도 보여주고 절대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다보니 속으로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죠. 그 책임자는 어떤 사유로도 규정상 이 물건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저는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고 공항검색대를 왔다갔다하며 40분 가량 이 양반들을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그 책임자에게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국제우편으로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전 곧바로 우편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네요? 그래서 인포메이션에 확인해보니 오전 8시에 문을 연다고 말했습니다. 전 다시 그 책임자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문 안열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줘라"
라고 말했고 그 책임자는 "방법없다"라고만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화가나서
"난 6시에 비행기를 타야 하니 니가 보내줘라. 비용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 베트남 주소를 알려주겠다"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답니다.
"그럼 너 가져라. 여기 직원들하고 나눠써라. 폐기처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더니,
그것도 "NO"라는 답변.
이미 오전 5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곧 있으면 전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내를 봤습니다. 불안한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전 다시 공항검색대로 가서 그 책임자에게 "OK, I will give it up"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짐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책임자는 "OK, thank you"라고 짧막하게 답하고 다시 검색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더라구요. 전 속이 쓰려 미칠지경이였지만,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였더라도 아내를 걱정시킬 수는 없었어요. 물론 아내도 속이 쓰렸겠죠. 하지만 그 새벽에 방법이 없었어요. 잊을 수 밖에.
사실 당시에는 방콕에서만 경유하는 사람들에게 재검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기억해보니 예전 신혼여행갔을 때 암스테르담에서도 경유를 했었는데 그 때도 검색대를 통과했었더라구요.
억울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제 잘못이죠.
그리고 스위스로 출발 할 때도 방콕에서 검색대를 통과했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도 잘못이였습니다.
그저 10만원어치의 값진 경험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