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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탐방

8년만에 다녀온 안성 '먹거리 여행'

주말에 경기도 안성을 다녀왔습니다. 이 곳은 제겐 좀 특별한 도시입니다. 대략 8년 전에 안성시 공도읍에서 한 1년간 근무를 했었지요. 제가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 곳에서 일하던 때가 좀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도 벌써 8년이 지났네요. 제가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과거 힘들었던 시간을 추억하러 간 것은 절대 아니구요. 순전히 먹을거리를 위한 것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추억은 힘든 기억보다는 음식으로 더 기억되더라구요.

 


지상최고의 포도가 있는 곳

 

안성은 안성맞춤이라는 브랜드의 소고기가 유명합니다. 실제로 상당히 맛있는 소고기를 먹어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제게 이 소고기를 제치고 더욱 뇌리에 깊게 남아 있는 것은 포도입니다. 포도? 라는 의구심과 함께 안성에 포도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신 분도 있으실 텐데요. 안성포도는 정말 환상적인 맛을 선사합니다.

 

지금은 안성이 많이 개발이 되었지만 제가 근무할 적만 해도 시내 한 복판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포도밭들이였습니다. 제가 안성에 처음 근무하러 간 때가 3월이였는데 그 때는 포도밭이 있구나 라는 정도의 인지수준이였죠. 9월이 되어 추석 앞이 다가오자 슬슬 도로에 농장에서 막 수확한 포도를 팔기 시작하는 판매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도 저는 포도를 별로 안좋아하는 사내라 그냥 보고만 있었죠.

 

그러던 중 추석이 코앞에 다가오자 인근 포도밭에서 포도를 저희 사무실에 강매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대략 80박스 이상을 구입했고 사무실에서 이를 직원들에게 그냥 나눠줬습니다. 이 포도를 집에 들고 갔더니 포도를 좋아하시던 저희 어머니는 아들보다 더 반기시더라구요. 반면에 강매로 산 포도에 대해 전 그냥 시큰둥 할 뿐이였습니다.

 

저와 달리 안성에서 들고간 포도를 맛보신 저희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감탄사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셨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드셨는지 포도 박스에 붙은 판매자 연락처를 찢어서 소중히 보관하실 정도였죠. 맛있다~를 연발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저도 맛보았는데 이럴수가 이렇게 맛있는 캠벨이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포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저를 포도 마니아로 만들어준 그 때의 기억을 안고 포도를 구입하고자 안성으로 갔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제가 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서 아직 김치냉장고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냥 냉장고에 포도를 보관하기에는 그 공간이 너무 한정적이라 많은 양의 포도를 살 수는 없었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일이였죠.

 

안성포도


안성톨게이트 초입부터 포도를 파는 임시 판매소가 보이지만 저는 진짜 믿을만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포도를 고를 때 품종도 중요합니다. 흔히, 캠벨이 있고 청포도, 머루포도, 거봉 이런 것이 있죠.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사러 갔던 것은 이 품종들은 아니였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스튜벤>이란 품종입니다. 달달함이 캠벨의 2~3배입니다. 스튜벤의 단점은 캠벨보다 조금 작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다른 포도 못먹습니다.


RPC 포도밭

 

제가 자주 가는 곳은 롯데마트와 중앙대학교 입구 사이에 있는 RPC 포도밭입니다. 한박스에 4kg을 담아서 판매합니다. 저와 아내는 스튜벤, 흥부사, 허니비너스 3품종을 섞어서 총 6kg을 샀습니다. 가격은 1박스 당 3만원이였습니다. 물론 덤도 후하게 주시더라구요.

(사실 포도라는 것이 kg로 정확히 계량해서 담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흥부사와 허니비너스는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 거봉처럼 생겼고 당도가 굉장히 높은 품종이였습니다. 기쁨마음으로 차에 싣고 왔는데 오는 내내 차 안에 단내가 진동했습니다.

 



누룽지 백숙의 끝판왕 ‘장수촌'

 

안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백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습니다. 어렸을 적 백숙을 보통 어머니가 끓여주시곤 했는데 그 당시 백숙의 닭기름이 왜이리도 느끼했는지요. 하지만 저의 이런 입맛을 변하게 해준 곳이 안성이였습니다. (아까 포도도 그런 케이스네요~) 특히 누룽지 백숙을 좋아합니다.

 

안성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달에 몇 번은 먹으러 갔던 그 집(장수촌)을 검색해보니 다행히 아직 영업을 하는 것 같아서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점심시간보다 좀 빠른 시간에 도착했더니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곧 빼곡히 사람들이 찰 겁니다.


장수촌


 

메뉴는 단촐합니다. 당연히 아내와 저는 누룽지 백숙을 시켰습니다. 가격은 아마 8년전보다 올랐겠죠. 8년전에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주문하고 10~15분이면 음식이 나옵니다. 먼저 밑반찬들이 나오는데 이 누룽지 백숙의 핵심은 바로 겉절이. 고소한 겉절이는 닭백숙과 조화를 잘 이루는 반찬입니다.

반찬이 나오고 곧 푹 익은 닭과 걸죽한 닭국물로 만든 누룽지가 나옵니다. 일단 양이 후덜덜합니다. 3~4명은 와야 먹을 수 있는 양이에요. 당연히 저와 아내도 다 못먹었어요. 닭 한마리는 해치우고 누룽지는 포장해야 했죠.

 


장수촌


일단 닭이 너무 부드럽습니다. 흔히 말하는 퍽살부위인 닭가슴살도 부드럽게 찢어지고 날개나 닭다리 부위는 혀에 대면 녹아 없어진다는 표현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닭을 고아야 이런 푸딩 같은 닭고기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아까 반찬으로 나왔던 겉절이 또는 깍두기와 함께 먹으니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8년만에 먹어보게 되었네요. 사실 다른 지역에서도 누룽지 백숙을 찾아 가보기도 했는데 이 집의 맛이 안나오더라구요.

 

누룽지 백숙




그렇게 목젖 아래까지 닭을 몸 속에 채워 넣은 우리 부부는 어마어마한 포만감과 맛에 대한 만족으로 히죽히죽 거리며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경기도 안성은 제게 과거 아픔을 준 곳이지만 이젠 맛있는 먹거리를 주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이 날 서울로 올라오면서 부대찌게 전문점인 <모박사> 본점에서 부대찌게 하나 사올걸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부대찌게 전문점 <모박사>는 여기 안성 본점이 제일 맛있거든요.


안성이 고속도로 막히는 곳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