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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 에세이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오늘 

9시가 넘은 시간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탔다. 잠실은 그 시간에도 버스에 자리가 나는 것을 찾기 쉽지 않는데 고맙게도 앉을 자리가 꽤 있었다. 내 작은 몸 하나 앉게 해준 이 작은 행운에 감사하면서 그 버스에 탄 그 누구나 그렇듯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 한통. 모르는 번호였다. 하긴 올해 초 휴대폰 전화번호가 다 날아가는 바람에 아는 사람일지라도 저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학후배였다. 그 후배와 전화통화를 해본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갑자기 울컥했다. 이 무심한 사람을 아직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옛친구도 만나보지 못하고 나를 그리워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도 하지 못하는 삶은 과연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깊어지자 잘 살고 있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만일 대부분 사람들이 '당신은 잘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추측컨데, 거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렇다"라고 할 사람들은 없으리라.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정말 잘못 살고 있다라고 느껴서라기보다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일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잘 살고 있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하며 사는것? 많은 돈을 버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꿈을 이룬 것? 이 수많은 의미들 중에 정답은 있을까 라는 생각에 피식 웃어버렸다. 다 정답이 될 수 있기도 하면서 다 정답이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곧바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맞다.

잘 살고 있다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다. 더 어리석은 일은 남에게 잘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 살고 있다라는 질문의 답은 그 질문을 내린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질문은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으며 그 가치를 지키고 있느냐 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을 지키고 살아간다면 스스로 잘 살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더 두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부끄럽게도 답을 하지 못했다. 흡사 누가 내 생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냥 쉽사리 내가 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의식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잘 살고 있는가 라는 것에 대해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인가 싶다. 

이는 어쩌면 다른 형태의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이 두려움은 혹시 내 삶의 가치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봐, 또는 나는 내가 그 가치를 훼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까봐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제.

어제 늦은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침대에 누어 아내가 평소에 보고 싶어했던 픽사 애니메이션 업(UP)을 VOD로 보았다. 평생 모험을 꿈꾸던 '칼 프레드릭슨'과 그의 아내 '엘리'가 만나고 결혼하고 늙어가고 혼자가 되는 과정에서 아내는 울어버렸다. 이 부부는 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누군가의 삶의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칼과 엘리의 삶은 잘 사는 것으로 평가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들이 평생 꿈꾸던 남아메리카로의 여행은 늙어서까지 이루지 못했지만 칼의 가치는 엘리였고 엘리의 가치는 칼이였다. 엘리가 죽고 난 후, 칼은 엘리의 또다른 가치까지 이루기위해 풍선에 집을 매달로 떠나게 되는 것을 보며 가치란 하나만이 아니고 변하지 않는 것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여행을 떠난 '러셀'을 구하기 위해 평생 아내와 함께한 집 안의 집기와 가구들을 버리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버릴 줄 아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놓지 못해 가치있는 삶을 거부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혹시 버리지 못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버리지 못하면 얻을 수도 없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야하고 그 가치는 버리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버리고 나서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움켜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텅 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