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하여 전북 남원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댁을 찾아갔습니다. 뭐 그리 오랜만에 뵙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저희 부부를 극성으로 반기셨습니다. 점심을 먹을 직후라 몸이 나른해져 한 두시간정도 낮잠을 잤지요. 자고 일어나니 아내가 외출하잡니다. 어딜갈까 고민하는 중에 어머니가 꽃구경가자고 하십니다. 남원에서 꽃구경하는 곳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 남원역터입니다. 몇 년전 남원역이 이전하고 기존에 있던 역을 화원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입니다. 저도 몇 번 들렀던 곳이고 예전에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것을 구경했었죠.
이 곳은 저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데 어머니를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가 남원역터에 다다르니 못보던 광경에 제 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아주 빨간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송이가 보였죠. 혹시 저거 양귀비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도 저랑 같은 생각이였나 봅니다.
"어? 이거 양귀비 아냐?"
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저기 많아~"
어머니를 따라 2~3분 더 걸어가니 저 멀리 빨간 점들이 수도 없이 바닥에 찍혀있는 장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양귀비라뇨. 아내와 저는 완전 신이 났습니다. 아마도 마약성분이 없는 꽃양귀비겠죠? 그렇게 많이 피어있는 양귀비는 제 생전 처음보는 광경이였습니다. 그 붉은 빛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였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기차역과 화려한 양귀비 군락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아직 전부 피지도 않은 상태였어요. 핀 꽃 보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몇 배는 많았습니다. 꽃양귀비가 5월부터 개화한다고 하니 아마도 이번달 말이나 다음달 되면 어마어마한 수의 꽃을 피어댈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나와 아내는 완전 신나~신나하면서 200장도 넘는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아~ 이 작은 시골마을에도 이렇게나 감성이 풍부한 공무원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나 다름없습니다.(공무원의 계획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감성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 분에게 상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였죠. 화창한 햇살이 양귀비 꽃 잎에 부서져 찬란히 빛을 발하고 산들거리는 바람에 양귀비 꽃이 흔들리며 우리를 유혹하는 모습은 황홀경에 빠지게 합니다.
기찻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가 보았더니 멋진 그늘과 녹음을 선사하는 이팝나무와 플라타너스, 각종 식물들이 아주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전국적으로 둘러본 그 어떤 식물원이나 화원보다 비록 규모는 작을지라도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제 고향에 이런 곳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부모님 만나러 간 것이 저에게 이렇게 복이 되어 돌아오네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가을이면 양귀비 대신 코스모스가 피어난다고 하십니다.
아~ 어찌 다시 가을에 방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