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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출판계약을 하고 난 뒤, 서문을 쓰면서.

출판계약을 하고나면 책쓰는 때만큼 바빠집니다. 원고를 송부하고 나서 출판사와 원고의 수정 및 여러가지 협의해야 할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죠. 사실 출판과정에 대한 것은 여러 책을 읽어보아서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과정을 겪게 되니 초보자가 늘 그렇듯이 멍해지더군요. 

원고를 보내고 나서 1주일 후 교정 원고안을 출판사로부터 받았습니다. 더 수정할 것 있으면 수정해서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책에 삽입할 사진의 배치와 표지디자인을 결정해달라는 얘기와 아래와 같은 숙제(?)를 받았습니다.


원고 작성하는 것도 진을 빼는 작업이었지만(책 쓰는 거 정말 힘든 작업이에요. 블로그 글들을 모아서 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듯이 하다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거든요) 출간 전까지의 숙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더군요. 제가 받은 숙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표지 앞면에 넣고자 하시는 문구 1~2줄

2) 표지 앞날개에 넣고자 하시는 저자소개, 저자사진

3) 표지 뒷면에 넣고자 하시는 본문 발췌글 또는 추천사

4) 표지 뒷날개에 넣고자 하시는 문구

5) 본문 맨 앞에 들어갈 서문


이 메일을 받고 잠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본문 원고를 작성할 때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내와 함께 서점으로 가서 저와 비슷한 컨셉의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책들 중 표지 디자인이 맘에 드는 것을 몇 개 골라봤습니다. 일단 메인 표지 사진이 필요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의 표지처럼 멋드러진 사진이 제겐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원하는 사진을 이미지 사이트에서 구입을 해도 되지만 전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을 넣고 싶었습니다. 근데 멋드러진 사진이 거의 없었죠. 베트남에서 찍었던 모든 사진을 몇 번이고 살펴봤지만 말입니다. 가장 '하노이'스러운 사진을 하나 골랐습니다.


하노이 거닐다

<표지 사진>


제 기준으로 하노이스럽다'약간 정돈되지 않은 거리와 오토바이,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건물들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그 어떤 것(말로 표현이 좀 어렵네요)' 입니다. 그 기준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 위의 사진이 아닌가 싶어서 이걸로 선정했습니다. 평소에 사진찍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어요. 아쉬운게 많아요. 


다음은 저자소개 및 저자사진입니다. 원래 아내와 저는 불특정다수에게 얼굴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라(못생겨서) 블로그나 이번 책에 삽입되는 사진에나 저희의 얼굴이 나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 부부의 실루엣만 나오는 사진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너무 감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베트남에서 찍었던 것 중 과감히 얼굴을 드러낸 사진을 골랐습니다. (이 글에서는 보여드리지 않을거에요^^ 못생겨서..)


호안끼엠

<프로필 사진 1차 후보안>


저자소개는 낯가지럽지만 약간 과장되게 써 볼 생각입니다. ㅎㅎ 이 프로필은 영원히 남을테니까요.


그 다음은 표지 앞면에 넣는 문구.. 뭘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해서 아직은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뒷면의 추천사도 제게 누군가 추천사를 써 줄리도 만무하고 그래서 제가 가장 맘에 드는 본문 문구를 넣어볼 겁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서문이 남아있습니다.


책을 구상할 때부터 서문을 잘써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못쓰겠어요. 제가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아내가 서문 초안을 썼습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서 보여드릴께요.




<서문>

하노이 거닐다


덥고 습하다.

답답하기도 한데 지치고 노곤하니 졸려와 길을 가다 쉬기 위해 길가 간이 음료 매대에서 까페(커피) 한잔을 시킨다.

목욕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간이 파라솔이 만들어 주는 그늘에서 땀을 훔치고 있으니 얼음이 가득 담겨진 찐득하고 새까만 커피가 유리잔에 담겨 나온다. 유리잔 위에는 여지없이 카페핀(Phin - 베트남 식 커피드리퍼)이 올려 있고 핀을 통해 내려진 진한 커피는 한약같이 까맣다. 핀을 치우고 꽂아진 빨대로 적당히 흔들다가 한모금 쪽 빨아마시면...

쓰다.

매우 쓰고 강렬하다.

정신이 바짝 든다.

써서 눈살을 찌푸리려고 하는 찰라 호두를 먹을 때 미처 골라내지 못한 호두속 껍질을 씹었을 때 느꼈던 떫지만 고소한 끝 맛이 올라오고 다채로운 향이 입속에 맴돈다.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운 날씨에 얼음이 서서히 녹아 농도가 연해지고, 강렬한 첫맛과 다른 은은한 신맛과 쓴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맛이 계속 변한다. 얼음의 크기가 반 이상 녹아 작아졌을 때는 또 다른 맛을 없나 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유리잔이 작아 보이면서 아쉬워진다




회사에서 아내가 보낸 메일 속의 이 글을 보며 전 "와~" 했답니다. 꽤 잘썼더라구요. 이걸 바탕으로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원하던 스타일의 서문이 나올 듯 합니다.


이렇게 저는 아직도 책을 발간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곧 출간될 저의 저서 <하노이 거닐다>는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몇 주후면 서점에 있는 그 모습을 기대하면서요. 절대 잘 쓴 책은 아닙니다만, 큰 의미를 지닌 책입니다. 내일까지 전 출판사의 숙제를 마무리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