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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거닐다

베트남에서 도마뱀과의 결투, 그 상세한 이야기

작년 7월쯤 블로그에 내가 살던 베트남 집으로 도마뱀 한마리가 들어왔었던 일을 가지고 글을 올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음 메인에 오르기까지 했었죠. 그 때의 일을 다시한번 얘기하려는 것은 당시 자세한 상황을 기술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랄까? 아니면 이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 도마뱀을 이해할 수 있었더랄까? 그것도 아니면 그 도마뱀에 대한 명복이랄까... 하는 그런 심정입니다. 저번 글에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고 했는데 오늘 그 때의 일을 상세히 그리고 정확히 회상해 보겠습니다.

 

<도마뱀 관련 지난 블로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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겍코

 

 집에 도마뱀이 들어왔다.

허걱. 아내와 함께 즐거운 쇼핑을 하고 두 손 두 발에 장바구니를 들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우리집 안방 앞에 보이는 저 물체.. 아니, 생물체. 도마뱀!! 어림잡아 내 중지보다 커 보이는 도마뱀이 우리집 벽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베트남에 살면서 저렇게 생긴 도마뱀 많이 봤었다. 해가 지고 기온이 서늘해지면 벽에 남아 있는 온기를 받고 있는 양 길거리 벽마다 붙어 있던 저 도마뱀. 살색과 흰색의 중간 정도의 빛깔이 나며 눈이 붉었던 저 도마뱀이 길거리가 아닌 왜 내 집안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의 Sweet House, 베트남에서 어렵게 구한 평화로운 나의 보금자리에 불청객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도마뱀은 겍코(Gecko)라 불리는 도마뱀이다. 동남아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캐릭터 상품도 있는 유명한 품종이였다. 하지만 난 보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내 집안에서는!!

 

아내와 나는 행복의 상징인 장바구니를 바닥에 털썩 내려놓고 살금살금 걸어가 벽에 붙은 겍코를 가까이 보기 위해 다가갔다. 이놈의 시키 움직이지도 않는다.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오면 어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줬으면 하는 바람은 공염불이였다. 정신은 이미 나갔고 도마뱀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찰라, 도마뱀이 후다닥 달려가더니 싱크대 상부장 틈으로 숨어버렸다. 일단,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좋았다가 이제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하하~ 나갔다.”

아내는 의구심이 강한 표정으로

진짜 나갔을까?”

라고 물었고 나는

어 나갔을거야. 저기 렌지후드 구멍으로 도망간 거 같애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대에 앉았는데 우울해졌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분명 밖으로 안 나갔을 것 같았지만 그런 상태를 내 머리가 현실부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도 역시 음울한 표정과 목소리로

에휴~ 뭐 같이 살아도 되지 뭐

라고 했으나, 나는 그럴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아직 겍코는 싱크대 상부장 어딘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같이 살아도 될까? 라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러다가 내가 자고 있는데 내 얼굴 위로 지나가는 도마뱀을 상상하자 치가 떨려왔다. 난 파충류가 싫다. 뱀도 싫고 개구리도 싫고 도마뱀도 싫다. 그래서 방문을 닫고 잠을 잘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저 도마뱀을 죽이기로

 

우선 숨어있는 도마뱀을 결투의 장으로 끌어내야만 했다. 싱크대 상부장을 두드려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아래에서 결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기척이 없길래 진짜 집 밖으로 나갔나 라는 희망을 아주 잠시 꿈꾸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일단, 주전자에 물을 받고 끓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전자에 있는 물이 영원히 끓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곧 물은 끓어올랐고 난 주전자를 집어들어 벽체 가구 사이에 있는 틈에다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이 물에 도마뱀이 죽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뜨거운 물이 가구 뒷편을 지나오면서 온갖 구정물이 되어 벽체에 흘러내렸고 그 때 왼쪽 벽에서 뭔가 튀어나갔다. 그 놈이다!

 

그 도마뱀은 상처 하나없이 벽을 기어 내려왔다. 하지만 도마뱀을 결투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에는 성공이다. 아내는 꺅꺅 소리를 내며 폴짝폴짝 뛰었고 도마뱀은 우리 거실 바닥 가운데 멈춰 서 있었다. 꼭 자기를 죽여달라는 것처럼..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그 도마뱀에게 던졌다. 그러나 역시 맞을 리가 없다. 도마뱀이 도로 뛰기 시작한다. 그 때 나는 한 방에 그 녀석을 죽이지 못한 방법을 쓴 것에 자책을 하고 있었다. 만일 저 놈이 바닥 어느 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군할아버지가 도운 듯 그 도마뱀은 화장실로 뛰었다.(단군할아버지 고마워요. 제가 담에 한 턱 쏠께요~)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같이 화장실로 뛰었고 화장실 벽체 붙어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뒤돌아 화장실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사이로 보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아내가 보였고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문을 완전히 닫았다. 이제 화장실에 녀석과 나 둘만 있게 되었다.

 

역시 화장실에도 틈이 있었다. 욕조가 벽과 밀착된 것이 아니라 녀석이 욕조틈으로 사라지는 전에 해치워야 했다. 수건을 집어 들었다. 수건 끝을 꽉 말아 쥐고 살금살금 겍코의 뒤로 다가가 수건스매싱을 준비했다. 그 때 도마뱀이 살기를 느꼈는지 뛰기 시작했고 나도 동시에 분노와 열망의 스매싱을 날렸다.

 

첫 방이 완전히 맞지 않았다. 아마도 뒷다리에 살짝 걸친 듯 하다. 스매싱된 수건에 걸려 날아갔지만 여건히 건재했다. 그리고 두번째 스매싱을 날렸다. 정통으로 맞았으나 힘이 부족했던지 꼬리만 잘리고 여전히 겍코는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세번째 스매싱, 네번째 스매싱, 다섯번째 스매싱을 날렸다. 이 와중에 나는 뭔 대단한 것을 한다고 우와아~~~”하는 괴소음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하고 맞기를 반복하던 겍코가 드디어 회심의 마지막 카운터에 맞아 쓰러졌다. 배를 뒤집고 누웠다. 내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수건을 쥐어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뒤집어진 녀석의 몸 위로 수건을 던지고 감싸 들었다. 드디어 승부가 났다. 나는 서서히 문을 열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싼 수건을 조용히 휴지통에 넣으며 내가 이겼음을 아내에게 알렸다.

 

겍코는 해충을 잡아먹는 도마뱀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귀여워하며 집에 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고마운 존재라도 같이 살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우리집에서 도마뱀이 나타나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이 글을 빌어 내 손에 희생된 이름모를 겍코에게 사죄한다. 

미안하다. 겍코야... 그래도 같이 살 순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