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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거닐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찾게 되는 물건

베트남의 날씨는 변덕이 죽끓듯하다. 겨울에는 조금 서늘한 편이지만 3~4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6~9월까지 폭발적인 더위를 선보인다. 하노이는 더구나 습도가 8~90%에 육박하는 곳이라 더욱 푹푹찌는 더위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비 내리는 일 또한 변덕스럽기 그지없는데 해가 쨍쨍 내리쬐다가도 금새 먹구름이 저글링마냥 몰려들어 장대비를 쏟아붇는다. 그 비를 보고 있다보면 아 이게 바로 스콜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강력한 비가 내린다. 바람까지 부는 날이면 의미없는 우산을 들고 비를 막아보겠다는 내 모습이 웃겨 보이기까지 한다. 우산을 쓰는 것이 이 비바람을 막는데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빗길에서 바람에 우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우산을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은 누가봐도 측은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대비도 두어시간이면 사라진다. 늘 그렇다. 우리나라 장마처럼 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그렇게 많이 볼 수 없다. 금새 비가 그치고 땅에 고인 물도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비가 내리는 시간도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듯 했다. 물론 내가 겨우 8개월 거주한 것으로 기상통계를 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거주하고 있었던 2014년에는 새벽에 주로 비가 왔다. 보통 새벽 2시에서 6시 사이에 비가 내렸었다보니 내가 출근하는 6시에서 6시 반사이에는 이미 비가 그쳐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그래서 우산을 가지고 다닐 일이 많지 않았다. 물론 낮에도 비가 온다. 낮에는 오후에 조금 내리는 수준이여서 퇴근할 때에는 역시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 비내리는 시간이 대충 정해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보다 비는 자주 내리지면서도 비 맞을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은 미스테리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몰아치는 비보다 무서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정전과 인터넷 끊김이였다.

하루는 외출겸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오후 5시쯤이였는데, 하늘에서 먹구름이 바글바글 몰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새카만 먹구름이 흡사 양동이에 가득 담은 물이 넘칠락 말락 하는 위태로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둥 번개가 몰아치고 하늘에서 양변기 물을 내리듯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쏟아졌다.

비를 맞지 않은 나이스 타이밍을 스스로 자축하고 있을 무렵, 집의 모든 전기가 나가버렸다. 우리집은 창도 없는 곳이도 했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여서 칠흙같은 어둠에 덩그러니 우리 부부만 남겨져 있게 되었다. 핸드폰 액정 불빛으로 연명하는 것도 귀찮기도 하지만 에어컨이 꺼지는 바람에 습한 더위가 엄습해왔다.

아내와 나는 나가기로 결정했다. 아래층에 내려가면 사무실 맞은편에 쇼파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사무실층과 로비층은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밖을 볼 수 가 있었는데 우리집만 정전이 된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어 집 밖도 컴컴했다. 오직 힘찬 빗줄기만이 굉음을 내며 골목에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집 가드가 손전등을 켜고 이리 저리 돌아다녀 보다가 윗층에 앉아있는 우리 부부를 보며 씩 웃어보인다.

우리도 "Xin Chao~(신짜오)"라고 인사를 하고 가드가 뭐하는지 지켜봤는데 주변 건물 가드들끼리 모여서 혹시 골목 배수구가 막혀 집에 물이 들어차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 의미도 없는 우산을 둘러쓰고 삼삼오오 모여 배수구에 나뭇잎이라던지 쓰레기가 모여 막히지 않게 정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즐거워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이런 밝은 모습들은 본받을 만하다. 힘든 일도 귀찮은 일도 놀이처럼 재밌게 처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귀차니즘과 득이 없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 내겐 적잖은 귀감이 되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한시간도 넘게 아내와 함께 아무말도 없이 바라만 보았다. 이런 경험도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였다. 그동안 잊고 있던 서정적 감정이 올라왔다. 한국에서 그동안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천둥이 치던 전혀 상관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었던 시간들로 인해 비가 주는 이 냄새와 소리를 얼마나 잊고 살았던가. 지금도 아내와 손붙잡고 작은 소파에 앉아 비를 바라보던 그 시간이 가끔 떠오른다.

이 비는 약 3시간 가량 내렸다. 비가 그치기 전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전기가 다시 돌아왔다. 이렇듯 비가 좀 세게 온다 싶으면 정전이 되곤 했다. 좋은 빌딩들은 자체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전기가 나가는 일은 없지만 일반 건물들은 한꺼번에 전기가 나가고 또 어떻게 다시 전기가 곧 들어온다.

정전보다 더 자주 있는 일이 인터넷이 끊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비가 오면 3G망이든 케이블 인터넷이든 다 느려진다. 그 정도가 심하면 인터넷이 끊긴다. 안그래도 한국보다 10분의 일은 느린 인터넷이 아예 인터넷이 끊기고 나면 정전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고치는 것 같았다. 이내 곧 다시 인터넷이 되기도 하지만 하노이가 자랑하는 거미줄 같은 전깃줄에서 인터넷선을 찾아 다시 연결하거나 수리를 하는 분들이 대단해 보일 때가 많다.

몇번 이런 경험을 하고나니 정전시 필요한 물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초를 몇 개 구입했고 비상용 손전등도 마트에서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정전은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였다. 장마철에 베트남에 갈 일이 있다면 손전등은 필수품일 것이다.

 

 

<우리가 구입했던 제품이다>

손전등은 하노이에서 비가 내리는 날 정전시 반드시 찾게 되는 유용한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