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좌측의 사진을 보신적이 있을 겁니다. 이 사람의 석고상을 자주 봤었으텐데요. 아그리파입니다. 저도 몇 번 이 분의 석고상을 그려봤었는데요. 드럽게 못그렸습니다.ㅎㅎ
오늘은 이 석고상의 주인공 아그리파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그리파의 정식 이름은
Marcus Vipsanius Agrippa 입니다.
아그리파는 BC 62년도에 태어났습니다. 이분이 석고상으로도 유명하시지만 로마초대황제인 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로도 유명하죠. 아우구스투스는 칭호고 황제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입니다. 그는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습니다. 카이사르는 다들 아시다시피 영어식 이름으로는 시저죠.
요즘 혹성탈출 영화가 흥행을 거뒀는데 제가 해외에 있다보니 그 영화를 못봤습니다. 거기 영화에서 유인원 지도자가 시저였죠. ㅎㅎ
여튼, 카이사르는 어린 아우구스투스를 황제로 만들고 그의 부족한 전투력을 걱정한 나머지 아우구스투스에게 저 석고상. 아니 아그리파를 붙여주게 됩니다. 이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를 도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전쟁도 했고 상수도 사업, 목욕탕 사업 등등 아우구스투스의 명성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는 BC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함대를 무찌른 장수입니다. 쌈박질도 꽤 잘한 장수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딸 율리아와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진 않았나 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은데요. 율리아가 방탕했다라는 말도 있고.. 여튼 돈도 안밝히고 여자도 안밝히고(여복도 없었지만) 묵묵히 황제를 도와 일만 했던 충신이였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그 정권을 유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죠. 이후 로마의 평화기를 만든데 일조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BC 43년에 호민관이 되었고 BC 37년에는 집정관이 될 정도로 출세는 했지만 재산도 없고 저서도 없고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존경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개인의 삶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는 옥타비아누스의 명성을 위해 목욕탕 시설 및 각종 건축물, 토목사업을 실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로마의 판테온입니다. 이 판테온을 한번 구경하는게 제 소원인데 이 석고상.. 아니 아그리파가 감독하에 지은 건축물이라 하니 더욱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 집니다.
<판테온, 사진출처 : http://cafe.daum.net/moapark/KHOO/1195?q=%C6%C7%C5%D7%BF%C2&re=1>
그리고 또 다른 것은 프랑스에 있는 퐁 뒤 가르(pont de gard) 라는 다리입니다. 아마도 학교다니실 때 교과서에 나왔던 다리인데요. 3중 아치 다리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다리를 악마가 지었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형태의 구조물이였기 때문이지요. 역시 아그리파의 감독하에 지어진 구조물입니다. 요즘시대에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퐁 뒤 가르(pont de gard), Copyright: © Editions Gelbart, Author: Jean-Jacques Gelbart>
이 충신의 대명사는 BC12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수많은 치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랑하지 않았고 오직 황제의 안정적인 치정활동에만 관심을 가졌던 아그리파는 여전히 그리기 어려운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