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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전재희 장관의 출산율 정책으로 본 아마추어적인 이명박 정권

 최근 출산율의 급감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최근 1~2년간 뉴스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는 소재이며 그로인한 대한민국의 노령화를 우려해 젊은 부부에게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의 출산장려정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얼마전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의 '가족친화경영'이란 주제의 간담회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출산장려를 기업에게 요청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즉, 출산률 저하가 현재 문제이며 아무리 홍보해도 안되니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기업에서 나서서 직원들의 출산을 독려해달라는 것이다.

항상 이런 문제마다 등장하는 질문이 그러하듯 한 참석자가 '아이를 맡길수 있는 어린이집 확보문제'에 대한 방안을 질문하자 전재희 장관은 "민간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육교사수당 인상을 위한 예산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라고 답변했다. 예산부족이 원인이라는 이유이다.

참 어리석기 그지없다.

이 나라의 장관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딴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무엇인지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수없이 언론이나 연구물, 통계치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출산율 저하는 육아비용과 사교육비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할 수가 없음을 이분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통계청에 의한 자료를 보면 출산율과 사교육비의 추이를 보면 반비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처럼 영아 사망률이 현저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식농사라는 개념으로 출산율을 늘렸던 것이라면 현재는 자식농사를 하고 싶어도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왜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최근의 핵가족화와 부모들의 맞벌이로 인해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강부자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어도 일반 중산층에게도 버거운게 사실이다. 학교에 들어가면 사교육과의 전쟁에 시달리게 된다. 공교육은 무너진지 오래이고 사교육을 시킬 목적이 없어도 같이 놀아줄 또래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서 놀고 있으니 사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공부목적보다도 단순히 친구와의 교류를 위해서이다)
이렇게 최소한의 고등교육까지 마치게 되면 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학비는 잘 알다시피 사립 및 국립을 불문하고 사상최고가를 달리고 있다. 1년에 1천만원이상 들어가는 투자비용(?)을 쉽게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장학금'을 받으면 될 수 있지만....

4년이상의 대학학비를 지불하고 나면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가 들어가게 된다. 이 비용은 그 당시 사회의 실업률에 비례하여 증가하게 되어 있으며 취업을 하였다하여도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유지하기 위해 위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경제적 빈곤의 굴레를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축산동물이 아니다.

전재희 장관은 혹시 국민이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를 낳아 길러주는 동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흡사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문명이 자신들의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간을 낳아 기르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자아가 있으며 먹고 사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문제를 넘어서서 자아실현이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사는 종족이다. 물론 종족보존의 본능 또한 있다고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개인주의 확산으로 인해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지고 있다. 그 누가 이런 것에 대해 비난 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부터 따져보자.

아이가 어릴때 왜 부모는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가. 육아라는 큰 책임을 두고 부모 모두가 산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것에는 역시 육아라는 책임에 의해서이다. 대한민국이 사회복지개념이 아직 희박하여 일을 하지 않으면 말그대로 굶어죽을수 있다. 또한 돈이 전부라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의 부모들은 뛰어다닌다. 이런 물질만능주의가 개인으로부터 태동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벌지 못하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는 사회를 개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법률, 규제, 복지, 교육정책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를 믿고 살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도 그 자녀가 질높은 교육을 받을 수 없음에 부모가 경제적 능력을 가지라고 종용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 이 문제는 입시문제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 좀 더 좋은 대학, 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우리 부모들은 자신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사교육에 쏟아 붇는다. 이미 국가 교육정책이 사교육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나 알고 있으나 국가는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헛다리를 집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활개를 치는 것이 공교육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교육을 살리려 노력한다. 한참 잘못 짚었다. 공교육이 죽은 것은 사교육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을 더 신뢰하고 신봉한다. 사교육의 비중이 커진 것은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두가 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성공하는 이 사회가 정상인가? 출발선이 다른 경쟁이 옳은 것인가? 단순히 졸업대학이 어디인가에 따라 취업성공률이 달라지는 이 사회.


그 누가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려 하겠는가. 그래서 취업을 위한 장소가 되어버린 상아탑. 학점과 토익점수와 의미도 없는 봉사활동이 개인의 인생을 결정짓는 비정상적인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는 학교를 나오면 덜떨어진 인간 취급을 받는 신계급사회. 유명한 대학출신별로 형성되는 현대판 길드(Guild) 학연과 지연. 이런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은 굶어죽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언급한 위의 문제들이 절대 비약된 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중세 철학의 중요한 전환이 되었던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플라톤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넘어가는 기점의 철학적 명제였다. 그 명제는 들판에 피어있는 장미들을 우리는 장미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미 하나 하나는 다 다르다. 그것을 모두 장미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개별적 장미 1송이는 의미가 없다. 이를 국가관으로 확대하면, 형체도 없는 국가를 위해 국민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을 통해 선진국들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자유방임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를 만들어냈다. 이게 이미 백년전이다. 수정자본주의는 사회복지를 기본으로 한다. 영국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잘 알려져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회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육아, 교육, 의료등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에서 지불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누구나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접받기 위해(대학을 다녔던지,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했던지, 지방대를 다녔던지간에)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해야 하며 부자들에게서는 버는 것만큼의 세금을 징수해야 하며 교육의 질은 높아야 한다. 약자는 보호하고 강자는 감시해야 한다. 이런 사회가 되었을때 국가는 강건해지고 국가경쟁력은 높아지고 출산율은 증가한다.

제발, 이 정권은 사태를 올바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는다. 국가관이나 철학이나 도덕성이 부재한 자들에게는 오로지 현재 하는 일이 모두 사업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나서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노리는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알려줘야 한다.

<니들을 보면 나도 울고 싶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