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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대화

장사의 원리를 깨달았던 21살


 때는 1998년 4월. 학교를 휴학하고 9월에 예정된 군입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군입대전에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보낼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휴학을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휴학할 당시에는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휴학하고 나니 여러가지 상황이 나의 계획을 훼방하고 있었다.

당시 자취를 하고 있을 때였으므로(본인의 글 '자취의 추억' 보다 한참 앞선 때이다. 이때도 연화마을에서 자취를 했었고 생활은 처절할정도로 힘들었다. 최초의 자취시절) 일단 돈을 벌자는 생각에 구인광고를 뒤적였다. 그 시절은 IMF가 터지고 얼마 안될 때여서 일자리 자체가 희귀했다. 대학1학년때 난 보통 식당(고기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역시나 그런종류를 찾고 있었으나 자리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는 중에 한 구인광고를 보게 된다.

'칼라병아리 파실 분'

오호 이거 끌렸다. 일단 노력하는 바대로 돈을 벌수 있다는 것과 더이상 식당 알바로 인해 망가진 무릎을 더이상 학대하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바로 전화를 했다. 상대방이 흔쾌히 수락하여 그분이 일러준 곳으로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그곳은 허름한 한옥집이였고 방 가운데를 파내어 병아리 수백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일명 '총판'이다. 어렸을 적 학교앞에서 파는 병아리 장수를 많이 봤었고 나또한 여러마리의 병아리를 구입했던 기억이 있어서 설레임이 앞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렸을때와 다른 점은 노란 병아리가 아니고 칼라 병아리였다. 참 신기했다. 병아리를 보니 몸체 색깔이 각양각색이였고 몸과 날개의 색깔도 서로 달랐다.
난 그분께 물어봤다. 이게 뭐냐고...

그분은 이 칼라병아리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신다.

DNA조작기술로 만들어낸 신개념의 병아리란다. 그러면서 뭘 나한테 가져다 주신다. 얼마전에 개봉했던 영화 'DNA'의 포스터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박스를 잘라서 막카로 쓴 'DNA의 혁명, 칼라병아리' 종이를 주신다.

나도 당시는 참 순진했던 모양이다. 그분의 말씀을 다 믿었다. 또한 이런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전북지역 총판이였기 때문에 나같은 판매자에게 병아리 몇판을 팔고 구역을 지정해준다. 난 일단 첫날 두판을 들고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교 근처 시장으로 갔다. 지금도 기억하건데 농협 앞이였다. 그리고 당시는 휴일이였기 때문에 농협은 문이 닫혀 있어서 그 앞에서 병아리 두판을 놓고 우측에는 영화 'DNA' 포스터를 좌측에는 'DNA의 혁명, 칼라병아리'를 놓았다. 일단 몸은 편하다. 그냥 앉아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병아리 한마리는 1,500원이였다. 내가 총판으로부터 구입하는 금액은 1,000원.
모이는 한봉지에 1,000원이였다. 내가 총판으로부터 구입하는 금액은 40kg 한포대에 10,000원


그렇다!! 여기에 장사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병아리를 팔면서 병아리로 돈버는게 절대 아니다.
병아리를 팔면서 끼워파는 손가락 한마디만한 모이로부터 돈을 버는 것이다. 모이 한 포대면 1,000원짜리 모이가 수백개가 아니 셀수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아리장수들이 그렇게 모이를 구매하길 권유하는 것이였다. 정말로는 그것을 팔아야 돈이 되는 것이다. 병아리 팔아봐야 마리당 500원 벌지만 모이를 팔면 90%이상의 마진이 남는 것이다. 거기다 모이를 두개를 구입하게도 할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장사였고 이것을 알게된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팔았던 병아리는 모든 신체 부위의 색깔이 다 달랐다.>

<사진출처 : http://cafe.daum.net/yesko/7juH/256?docid=18Nc1|7juH|256|20090413111010&q=%C4%AE%B6%F3%BA%B4%BE%C6%B8%AE&srchid=CCB18Nc1|7juH|256|20090413111010>

 
시장에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들이 병아리를 보더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불행하게도 당시는 3월이였다. 아직 꽃샘추위가 다 지나지 않을 때여서 그런지 유독 그날은 추웠다. 모든 병아리들이 추위를 느끼는지 박스 한곳에 종기종기 모여 눈을 감고 삐약대고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병아리를 보고 자기엄마의 손을 끌고 내쪽으로 오면 난 은근슬쩍 박스를 발로 툭 찬다.

그럼 잠자고 있던 병아리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삐약 삐약'대면서 막 돌아다닌다.

그리고 모든 고객(엄마)는 나에게 묻는다.

"이거 염색한거 아니예요?"

그럼 난 자신있게 말한다.

"아니에요~ 이거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병아리입니다."

정말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정말이였다.

모든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모든것을 후하게 사주시질 않는다.

참 팔아먹기 힘들 때, 다른 아이와 어머니가 나를 향해 빠르게 오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손에 칼라병아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오기전 다른 사람으로부터(전에 이구역을 담당했던) 구입했던 것 같다. 나를 보더니

"아저씨, 이거 염색한거 아네요? 여기 털 아래 보니까 노란색이던데요?"

그리고 병아리 털을 뒤집어보니 정말이였다. 안에는 노란색 털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장사 첫날이였지만 나또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보다 우선적으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모든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하..하.. 아주머니 이건요~ 신개념의 병아리에요.. 이게 자라면서 여기 털처럼 주황색으로 변하는것이랍니다.^^"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왜 이런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당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도 내정신이 아니였다.
근데 이 아주머니 수긍한다........

이때부터 장사가 되지 않는다. 총 6마리와 모이 5봉지를 팔고 접어야 했다. 해가 진 때가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더이상 손님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의욕을 잃었다. 철썩같이 믿었던 유전자 개발의 뉴 아이템 칼라병아리가 염색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난 이제 전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총판 새끼는 데리러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알아서 오라고 했다. 난 병아리 두박스를 들고 익산 터미널로 갔다. 도저히 좌석에 들고 탈수가 없어서 버스 옆에 짐 놓는 곳에 병아리를 두었다.

버스를 타고 전주로 돌아오고 있는데 버스가 커브를 돌때마다 아래에서 병아리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삐~~~약!!!!, 삐~~~약!!"


병아리도 울고
나도 울고
박스종이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