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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거닐다

베트남 하노이 생활 중 일취월장한 아내의 요리솜씨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전 아내와 베트남에서 가서야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말부부였거든요. 아내와 연애하는 8년간도 주말에만 만나야하는 서글픈 신세였었죠. 뭔가 오작교가 필요했는데 그게 베트남 하노이가 오작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노이에서 다시 만난(?) 아내와 집을 구하고 짐을 풀고, 처음으로 퇴근하고 집에서 밥을 먹는 생활을 해보게 되었지요. 그 덕에 한국에 들어온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에는 주말에 가끔 집밥을 먹게 되지만 하노이에서는 거의 매일 집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내나 나나 당연히 매일하는 식사에 신경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내가 더 심했겠지만요. 저희는 한국에서 장모님표 김장김치 한 포기와 김 한봉지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현지 조달하자는 각오로 베트남으로 들어왔었어요.

 

 

 

 

집을 구해 들어가니 다행히 냄비 2개와, 프라이팬 하나, 칼 하나, 숫가락, 젓가락은 집주인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가위도 하나 있었는데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 하나 구입을 해야 했습니다. 놀랍게도 저희는 하노이 생활 8개월동안 모든 식사를 위한 도구를 이것만 사용했습니다. 원래는 베트남에서 전기밥솥을 구입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시작한 냄비밥으로  인해 하노이를 떠날때까지 냄비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냄비가 두개였는데 하나를 밥 짓는데 사용하고 하나는 국 끓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식자재는 주로 대형마트를 이용했습니다. 롯데마트나 Bic C 마트, K-mart, Ocean mall을 주로 다녔습니다. 채소류는 아내가 집 근처 조그마한 채소집에서 구입했지요. 아내가 현지인들처럼 재래식 시장에서는 뭘 사기 좀 꺼려했어요. 위생 문제 때문에요. 뭐 해외근무로 높아진 월급 덕분에 굳이 저렴한 것들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럼 저희는 어떤 것들을 해먹고 살았을까요? 지금부터 기억을 더듬어 소개해 봅니다.

 

 

 

 

1. 4월 12일 : 맨 처음 요리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했던 집밥입니다. 일단 마트에서 쌀을 5kg짜리 하나를 샀습니다. 호기 넘치게 베트남 쌀을 샀죠. 베트남에 쌀 종류 정말 많아요~ 근데 베트남 글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저희는 일단 한국쌀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쌀을 구입하고 냄비로 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냄비밥을 안해봤다고 해서 과거 자취시절 냄비밥의 마에스트로였던 제가 밥을 했습니다. 그런데 What the hell.... 물량도 적절했고 불조절도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찐득찐득한 밥이 되었습니다. 이 후 몇 번을 해봐도 마찬가지였죠. 아마도 추정컨데, 쌀이 아니였나봐요. 뭔 찹쌀같은게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국은 그냥 김치를 넣고 끓이기.. 조미료도 딱히 없어서 그냥 김치의 힘을 믿고 국을 끓였으나 그 밍밍한 맛은 김치의 희생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 밥을 먹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죠.

"우리 요리 겁나 못하나봐~  ㅜㅜ"

 

 

2. 만두국에 도전

 

 

만두국은 제가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우연찮게 쭝화거리의 한국식 식재료와 먹거리를 파는 K-mart를 발견하고는 가장 먼저 사왔던 것이 이 만두입니다. 아내에게 만두국을 끓여달라고 했는데 기가막힌 만두국을 한국에서 어떤 외식업소에서도 못먹어 본 최고의 만두국을 저에게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날 이후 만두국 참 많이도 먹었습니다. K-mart 만세~

그리고 아내가 피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을 보고 따라 만들더니 어디다 내다 팔아도 될 품질의 피클을 생산하기 시작했죠. 지금도 이 피클을 저희는 먹습니다.(아내가 이거 써 달라고 해서 쓰는거 아닙니다. ㅎ)

 

 

3. 된장찌개가 탄생하다. 

 

 

앞서 말한 만두와 함께 구입한 된장과 냉동 돈까스, 그리고 동네에서 구입한 베트남 두부. 된장이 살짝 달작지근하지만 밥을 먹은 것처럼 먹게 해준 국거리였습니다. 베트남 두부와의 앙상블은 정말 한국-베트남간 수교를 맺은 듯 윈윈의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돈까스는 튀김음식이 주는 식도락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 주었고 우리 부부에게는 베트남 생활 중 받은 선물과도 같았죠.

 

 

4. 집 앞 채소가게와 거래가 시작되다

 

 

아내가 간간이 장을 보던 베트남 가게에서 본격적으로 대규모 거래를 성사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야채, 채소, 과일을 집 앞에 있던 아주 작은(집 앞에다가 몇 개 내놓고 오전에만 잠깐 파는 그런 소규모의) 가게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를 보던 할머니와 안면을 튼 것도 있고 마트보다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싸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드디어 베트남어로 숫자를 말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죠. 제가 보기엔 마트나 이런 가게나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는 농약을 칠 돈도 비료를 뿌릴 돈도 없기 때문에 거의 다 유기농이거든요. 상태는 좋아보이지 않지만 농약 안 친 농산물 먹는 거 쉬운거 아니잖아요.

아~ 그리고 아내가 베트남 산 달걀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5. 식탁에 구워진 고기가 올라오다.

 

 

비록 집 앞에서 파는 고기를 사먹지는 못하지만 마트에서 고기를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고기의 부위가 정해져 있지도 않은 거 같고 뭔지도 모르겠어요. 크게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로 구분되고 부위는 아무리 찾아봐도 구분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군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과감히 고기를 사서 프라이팬에 구어봤습니다. 역시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하. 제법 고기 구워 먹는 흉내는 내지 않았나요? 고기값도 참 저렴해서 많이도 구워 먹었네요.

 

 

6. 스팸의 발견

 

 

초기에 베트남산 스팸을 구입했다가(사실 스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한입도 못먹고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냄새가 좀 역겨웠거든요. 그러다가 쭝화 Ocean mall에 있는 K-mart 코너에서 발견한 한국 스팸! 어찌나 반갑던지요. 이산가족을 만나는 기분이 그런 것일까요? 어마어마하게 비싼 가격에 구입했지만 어찌 안살 수가 있습니까? 적금을 깨서라도 저 스팸은 사먹어야 했어요. 오랜만에 먹은 스팸에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역시 밥에는 스팸이 진리입니다.

 

 

7. 김치찌개의 달인이 되다.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가 거의 사라졌고 김치국물만 고이고이 보관하고 있던 시절, 쉬어버린 김치국물을 활용할 목적으로 김치찌개를 많이도 먹었습니다. 김치는 보통 마트에서 구입한 것을 사용했구요. 사진 아래에 있는 몇 점 안남은 김치가 장모님표 김치입니다. 아까워서 몇 개 못먹어요. 그러나 아내는 김치찌개의 달인이 되었어요. 고기도 넣고 라면도 넣고 육수도 어떻게 내서 오모가리 찌개같은 맛을 냅니다. 아내가 존경스러웠습니다. 베트남에서 저 몰래 요리학원이라도 다녔나봐요.

 

 

8. 살이 찌다.

 

 

처음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무지하게 더운 나라로 가게 되니 이왕 이렇게 된거 살이라도 왕창 빼서 돌아오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땀이 좀 많은 체질이라 더운 나라에 가면 매일 어마어마한 육수를 뿜어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우려하셨던 키 작고 뚱뚱한 사람이 되는 과정에 있던 시점에 다이어트가 필요했고 베트남은 다이어트에 최적의 환경조건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저렇게 먹다보니, 8개월 베트남 생활동안 7Kg가 살이 더 쪘어요. 아내도 쪘어요. 누구한테 베트남에서 타향살이로 고생한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 살이 안빠져요 ㅜㅜ

 

 

9. 하이라이트 : 추석명절

 

 

 

 

작년 베트남에서 추석명절을 보냈습니다. 아주 당연하게 회사는 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베트남 명절이 아니다라면서요.(베트남 명절 때는 우리랑 뭔 상관이냐 면서 역시 안쉬었으면서 말이지요) 아내는 한국에는 못가지만 명절분위기는 내겠다면서 추석 며칠전부터 각오를 다지더군요. 추석 당일 저는 출근을 했고 아내는 점심을 먹으러 오랬습니다. 점심때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대리 한명을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산적, 동그랑 땡, 호박전, 숙주나물, 두부전, 장조림을 시전하였습니다. 아~ 한국에서 지낸 명절 때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습니다. 며칠전에 장을 보긴 했던데 저런 재료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네요.

과연 베트남 하노이 생활 중 해먹은 음식 중 '갑'이라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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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든 어디든 먹고 입고 잘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행히 베트남 하노이는 수도답게 식재료에 대한 많은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초반에 좀 고생은 했지만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겁이 없어지니 요리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지요.(여기에는 반드시 남편들의 응원과 맛있다는 리액션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조리기구에도 불평불만은커녕 즐거워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해준 아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부부는 이렇게 함께 살아야 합니다~(주말부부 안좋아요~)

베트남 생활 덕분에 아내는 지금도 요리를 꽤 잘합니다. 저도 왕년에 요리 꽤나 했는데 아내에겐 이제 안돼요~ 아내도 시키지도 않습니다. 부엌 어지럽힌다구요 ㅎㅎ

 

 

여러분의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