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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거닐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집을 구해 들어간 그 날..

2014년 3월 말 베트남에 파견을 갔습니다. 2014년 11월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살았습니다. 아래는 그 때 겪었던 저와 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2014년 4월 초.

호텔방에서 살기를 일주일 째 드디어 계약한 집으로 이사를 시작했다. 저녁 6가 넘어서 대여섯개 되는 짐을 바리바리 들고 우리의 보금자리고 이동하는 그 순간은 감회가 새로웠다. 베트남에서의 터전이 될 그 집은 월 650불이나 되는 고가의 주택이지만,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거리정도로 가까웠고 무엇보다 도로와 떨어진 곳이라 안락한 곳이였다. 낮이나 밤이나 오토바이 소리로 시끄러운 베트남에서 이만큼 조용한 곳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Van Phuc Street, 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저희 집이에요>

 

이사짐을 나르는 거리는 택시로 3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택시기사는 흔쾌히 우리와 많은 짐들을 집 앞까지 실어다 주었다. 집에 들어가니 집주인인 미스터 남(Nam)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을 지켜주는 가드(Guard)와도 인사를 했다. 키를 받아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담하니 좋은 집이다. 작지만 내 한국에서 집보다 싱크대도 컸고 쇼파도 있고 식탁도 있고 작지만 냉장고도 있었다. 화장실에는 무려 욕조까지 달려 있었다. 방에는 침대 하나와 조그마한 테이블, 그리고 옷장까지 구비된 집이였다. 

 

 <1층 출입구입니다. 엘리베이터도 있어요>

 

<저희 주방 겸 거실입니다.>

 

미스터 남(Nam)이 뭐라뭐라 설명해주는데 안그래도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 베트남식 영어는 외계어에 가까웠다. 대충 "yah~yah~"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지만 알아듣지는 못했다. 얼릉 집주인이 나가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였다. 한 2~3분쯤 미스터 남의 일방적인 대화를 끝내고 나서야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아무리봐도 어디하나 나무랄데 없는 집이였다. 다만, 창문이 없는 곳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베트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곰팡이가 없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가끔 한국인들이 주로 사는 월 1,000불이 넘는 빌라에서도 여름이고 겨울이고 곰팡이 때문에 고생한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던 바라 어느정도 곰팡이는 각오를 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계약한 이 집은 곰팡이 비스무리한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집을 구할 수 있었던 아내의 노고와 식견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고야 말았다.

 

어차피 짐은 하루밤에 다 정리하긴 힘들었다. 이사를 숱하게 다녀본 나의 경험상 이사짐은 한 달은 더 흘러줘야 짐이 제자리를 찾는 법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 아내를 진정시키고 음식물류만 냉장고에 넣어두자고 했다. 그러나 그냥 음식물을 냉장고에 넣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던 아내는 냉장고를 닦기 시작했다.

 

침실과 거실을 둘러보던 나는 너무 조용한 주거 환경에 감탄을 연발하고 다시 한번 아내의 집 초이스 능력을 치하했다. 아내의 닦기 능력으로 새로 태어난 냉장고에 비로서 김치가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한국이였다면 8시 정도 밖에 안되었을 시간이여서 잠이 오지 않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 잠을 자두어야 한다. 한국시간으로 4시에는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젠 슬슬 시차적응을 할 필요성이 있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보니 그래도 더위는 어쩔 수 없었다. 아직 4월에 불과했지만, 베트남은 참 덥다. 다행히 에어컨이 거실에 하나 침실에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시스템이더냐. 한국에서야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자는 일은 거의 없지만, 베트남에서는 에어컨을 켜고 잘 수 도 안켜고 잘 수도 없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감기에 걸리고 안켜고 자면 더위에 몸부림을 치게 된다. 일단은 더우니 에어컨을 켜고 자기로 했다. 침대는 참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침대 매트리스 스프링이 등짝을 군데군데 찌르고 있었다. 호텔 침대보다야 못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우리의 보금자리 아닌가.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스런 마음을 지닌 채 아내와 손 꼭 붙잡고 잠을 청했다. 여전히 고요했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라고 생각한 순간,
'부다다다다. 쿵.쿵.쿵'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난 건물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니 뿌레카(Breaker)소리다. 뿌레카는 철거할 때나 구조물을 부술 때 쓰는 장비가 아니던가. 이 야심한 밤에 갑자기 들리는 뿌레카 소리가 낯설고 겁이 났다. 아내도 이내 일어나 눈을 꿈벅꿈벅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윗집에서 뭔 공사하나?"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물론 당시에는 소리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근데 이 뿌레카 소리 밤새도록 들렸다. 나야 평소에 한번 잠이 들면 축구 한일전때 한국진영이 골을 넣을 때 들리는 함성소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꿈 속의 나와 히히낙낙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어느정도 잠은 잤지만, 아내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침에 일어나 얘기를 들어보니 새벽까지 잠을 못 잔 모양이다.

 

그렇게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니 아내가 말했다.
"오빠, 우리 옆집 공사해"
"무슨 공사?"
"몰라 건물 새로 지을 건가봐"
그렇다. 전날 우리가 들었던 소리는 우리집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을 허무는 소리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공사를 해댄다. 특히 중장비나 콘크리트 타설은 규정상 밤에만 공사를 해야만 하는 곳이 베트남 하노이이다. 베트남 집들은 한국처럼 단열이나 흡음을 위한 건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소음전달은 큰 문제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무도 공사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같았으면 구청에 전화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했을텐데, 공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불행히도 우리집 옆에서 우리가 이사한 날 부터 공사를 하던 그 집은 우리가 하노이를 떠나는 그 날까지 공사를 했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소음은 들려왔다. 가끔 공사는 쉬는 날은 너무너무 감사하기까지 했다. 후에 마감 공사 할 때쯤 되어서야 조용한 밤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우리도 소음에 적응을 하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