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매거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이제서야 찾아가 보았습니다.

베트남에 3월 말에 파견을 갔습니다. 베트남의 더위에 적응하지 못해 겔겔거리고 있을 무렵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을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좌초나 악천우에 의한 사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배는 점점 침몰해갔고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대로 수장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크나큰 충격이였습니다. 어뢰에 맞은 것도 아니고 아주 깊은 밤에 일어난 일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마치 스너프 필름을 보듯 그 잔인한 장면을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결국 배안에 있던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죠.

더욱 화가 난 것은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원인규명도 하지 못했고 무능한 정부는 선장과 관계자 몇명을 처벌한 것과 유병언이라 주장하는 부패된 시체 뒤에 숨어 면죄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에 있으면서 JTBC뉴스 덕분에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작년 광화문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단식투쟁이 한창일 때 아내는 저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광화문에 가서 일일 단식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좋다 같이 가서 일일단식이라도 하자라고 했습니다. 작년 11월 우리는 귀국했고 서울 잠실로 발령받아 저번달에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후 생활이 좀 안정되자 아내는 저에게 다시 말합니다.

"우리 이번 주말에 광화문 가자" 라고요.

저는 흔쾌히 "그래 가자"라고 했고 어제 토요일 광화문에 드디어 가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서울시에서 광화문 농성장을 철수하겠다라는 기사를 접한 뒤라 하루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광화문에 가서 세월호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초라했습니다. 가뜩이나 날씨도 흐려 세월호 농성장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하는 듯 합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다수의 관광객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광장에서 농성장으로 가는 길에 매달려 있던 여러 글귀들을 찬찬히 읽으며 걸었습니다. 농성장 주변에는 여전히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한 전경은 채증을 위한 카메라를 들고 다녔습니다.

 

 

 

맨 처음 눈에 보이는 것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갇혀버린 아이들의 얼굴과 노란 리본들이였습니다. 차마 아이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란 리본은 왜이리 새카맣게 때가 탄건지... 새로 깨끗한 리본을 하나 달아주었습니다.

 

 

 

 

왜구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차가운 바다에서 죽은 아이들을 기리는 저 쪽지가 어색해 보입니다.

 

 

저와 아내는 세월호 인양 촉구를 위한 범국민 서명에 이름을 적고 부끄러운 만원짜리 한장을 모금함에 넣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절대 잊지 않을께' 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