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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대화

휴대폰 잃어버린 아내에게 내가 했던 이쁜 말

어제 새로 이사갈 집의 인테리어와 청소를 위해 아내가 상경했었습니다. 저는 출근을 해야 해서 이 고된 일을 아내가 혼자 할 수 밖에 없었죠. 아내 혼자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고 가격 흥정을 하고 공사를 관리하고 공사가 끝나고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을 하루종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같으면 보통 제가 저녁 9시쯤 퇴근하는데 어제만큼은 아무리 눈치가 보여도 저녁 6시 반에 퇴근하고 나왔습니다.

 

이사집에 가보니 아내가 창문을 다 떼어놓고 쪼그려 앉아 창문을 닦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는 것이 이렇게 일찍 퇴근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아내 핸드폰 배터리가 조금밖에 없어서 휴대폰을 꺼놓았기에 출발할때 연락을 할 수 없었죠. 밥도 못먹고 일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워 저도 정장을 입은 채로 고무장갑을 끼고 집 구석구석 묵은때를 락스와 식초를 이용해 닦았습니다. 그렇게 일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9시가 다 되어갔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밥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하고 둘이서 집을 나서는 중에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핸드폰 챙겼어?"

 

아내는 저를 보며 주머니를 뒤져보더니 다시 가방을 뒤지더군요.

 

"어? 내 핸드폰 어딨지?"

 

가지고 나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시 이사집으로 들어갔죠. 집 구석구석 찾아도 아내의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통화한 때를 생각해 보라고 했고 아내는 물건을 사기 위해 인근 약국에 들르기 전에 장모님과 통화한 게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지체없이 그 약국으로 가보았습니다. 집하고 약국 사이의 길을 샅샅이 뒤지며 가보았지만 휴대폰이 보일리 만무했죠. 설상가상으로 통화후 들렀다던 약국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아내는 약국에 들르기 전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며 아무래도 중간에 흘린 거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아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빠..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아직 할부금도 40만원이나 남았는데..."

 

저도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돈 계산부터 되었습니다. 할부금 40만원에 새로 휴대폰을 저렴한 걸로 산다고 해도 60만원 정도... 총 100만원은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죠. 길거리에서 계속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아내를 보니 안쓰러웠습니다. 혼자서 청소하게 한 내가 더 미안한데.. 자신의 실수로 돈 100만원이 깨지는 걸 미안해 하는 아내를 타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내 아내를 안심시키려 애썼습니다.

 

"괜찮아.. 살면서 그럴수도 있는거지. 자기 잘못이 아니야."

 

아내는 그래도 미안해 했습니다.

 

"내가 왜 정신을 제대로 못차려서... 내 잘못이야.."

 

저는 택시를 타고 잠실역에서 내린 다음 아내의 등을 토닥거리며 다시 말했습니다.

 

"자기야 걱정마 아마 약국에 있을거야. 그리고 휴대폰 잃어버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일도 아니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않아. 좀 오래된 거 사면 많이 싸니까 그거 하나 사서 써"

 

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을 하고 있는 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닙니다. 돈도 돈이지만 새로 이사하면서 이런일이 생기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저는 아내의 심적안정이 더 중요했습니다.

 

"전혀 중요하지 않아. 걱정마"

 

아내는 눈물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중요한게 아냐?"

 

"응 하나도 안중요해. 지금 자기 배고픈게 제일 중요한 일이야"

 

그렇게 아내를 진정시키고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한 말이 너무 멋있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휴대폰 잃어버린 것은 이미 발생한 일이고 아내에게 짜증낼 일도 아니지만 짜증낸다하여 누가 나한테 돈 100만원 주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전 출근을 했고 아내는 마지막 싱크대 공사를 위해 다시 그 집으로 갔습니다. 오전 내내 저는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전화기가 꺼져있어~'라는 멘트만 들렸죠. 점심때가 되어도 휴대폰을 찾았다거나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다라는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후 1시가 될 무렵 장모님께 문자가 왔습니다. 아내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얘기였죠. 전 장모님께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그러니 제가 연락을 취해보겠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사집에 있으면 인테리어 공사하시는 분과 같이 있을거란 생각에 그 업자분께 연락을 해보려고 한 찰나, 아내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냉큼 받아보니, 아내의 목소리입니다.

 

"나 핸드폰 찾았다~" 라는 밝은 목소리였죠.

"어디서?" 라고 저는 물었고 아내는 청소 용품 주머니 맨 바닥에 깔려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라는 소리를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제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은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릅니다.

 

아내와 저는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은 우리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라고요. 안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든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든 우리 삶의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은 이벤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