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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

SF 공상과학 소설(단편) "아포칼립스"

그 날이 있은 후 8일이 지났다.(그 날을 사람들은 아포칼립스라고 했다.)

 

인류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로 대면하게 된 그 사건 이후로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지금 나는 전혀 외출을 하지 못한다. NASA와 정부에서 외출을 전면적으로 규제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모두 그 말에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아포칼립스가 있었던 그 날은 평소 그 어느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그 날이 오기 2일 전, 태양의 강력한 흑점폭발이 있었다. 그동안 관측되었던 수많은 흑점폭발보다 수십배 강력한 것이였다. NASA에서는 태양폭풍으로 인해 GPS교란, 통신장애 정도만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사태였다. 이 폭발을 직접적으로 맞은 수성은 자전속도가 줄었을 정도로 강력했다. 흑점 폭발 후 무엇보다 태양풍이 초속 2,000km의 속도로 지구를 강타하게 되었다. 이 태양풍이 계산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순식간에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과 전리층을 날려버렸다. 이것은 정말 순식간이였다.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있었을테고 누군가는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방비없이 인류는 자기장과 전리층의 67%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즉시, 모든 국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통신 및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이 중지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지구는 태양에서 분출되는 우주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는 생물체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방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국가에서는 자국민들에게 외출을 금지하고 햇빛에 노출되는 것에 주의를 당부했다. 혼돈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컴퓨터로 재래식으로 연결한 통신을 이용하여 몇 명과는 연결이 가능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그들과 함께 걱정어린 말들을 포함하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컴퓨터에는 나 외에 2명이 접속되어 있었다.

신경정신과 병원 의사인 김수희 박사와 과기부에서 일했던 우현교수였다.

먼저 우현교수가 말을 걸어왔다.

 

"소피스트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이미 지구의 극이동현상이 본격화 되었어"

 

지구의 자기장이 날아가버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자석과 같았던 지구의 자기상태가 비정상적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은 3일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침반을 보면 N극을 가르켜야 할 지침이 방향을 못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지구의 극이동 현상은 지구역사상 여러차례 있었음은 지질학적 발견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나 내가 살아생전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우주선의 추이는 어때요?"

 

나는 물었다.

 

"지금 밖에 나간다면 2~3일 안에 죽게 될 것이야.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이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이 수십억일쎄"

 

"이렇게 집에 있으면 괜찮은 건가요?"

 

"글쎄.. 거짓말은 하지 않겠네. 이미 우리는 우주선을 맞고 있어. 우리도 곧 죽겠지..."

 

정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 콘크리트 구조물도 무심히 통과해버리는 우주광선이라니... 이론적으로만 배워왔지 실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근데 이상한 현상들이 있었어요"

 

김수희 박사가 말했다.

 

"그게 뭐죠?"

 

나는 되물었다.

 

"사람들이 좀 이상해지고 있어요. 아마 태양풍을 맞고 난 후 3일 정도 지났을 때였을 거예요. 환각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전세계적으로요. 지금은 상황을 잘 알 수는 없는데, 깊은 잠을 잔다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 환청, 환각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우주선의 영향인가요?"

 

김박사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음 얘기를 이어갔다.

 

"근데 그 수가 점점 늘어간다는 거예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세가 계속되고 있고 인종,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전방위적으로 아니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거 같아요. 오늘 받은 레포트를 보니 공통점이 하나 나오긴 했죠."

 

"그게 뭔가요?"

 

나와 우교수가 동시에 물었다.

 

"MBTI 검사 결과와 비교를 해본 것인데, 성격이 온순하고 차분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죠. 이미 이 계통에서는 악마의 병이라고 소문이 돌고 있어요. 범죄자들이나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발견사례가 드물어요. 진짜 악마의 병인가봐요."

 

"음.. 단순히 우연이겠죠. 지금 이 사태와 그건 연관성이 없는 거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다시 채팅창에 글이 올라온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

 

다시 이틀이 지났다. 다시 채팅방을 들어갔다. 다행히 아직 이 통신라인은 망가지지 않았나 보다. 모니터를 보고 두어시간 지나니 김박사가 들어온다.

 

"김박사님 무사하셨군요. 혹시나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소피스트님. 그 때 제가 한 얘기 기억하시나요?"

 

"네? 어떤.."

 

"사람들의 환각증세요.."

 

"...아... 네 기억해요. 근데 그게 왜요?"

 

"어제 우교수님과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눴는데 설득력있는 가설이 만들어졌어요. 곧 우교수님이 들어와서 설명하실겁니다."

 

난 지금 이 인류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에 사람들의 환각증세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한 시간여를 아무말 없이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곧 우교수님이 접속해 들어왔다.

 

"우교수님 오셨군요."

 

"소피스트군, 김박사. 시간이 없네.. 아마 2시간 정도면 우리는 모두 끝날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 김박사가 얘기한 환각증세에 대한 레포트를 받아보게 되었네"

 

"그런데요?"

 

"혹시 자네 슈만공명이라고 아나?"

 

"슈만공명이요? 지구 고유 주파수를 말씀하신 겁니까?"

 

슈만공명이란 1952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슈만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지구의 고유 주파수를 말한다. 이 주파수의 크기는 약 7.83Hz로 지구의 지표면과 전리층 사이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공명이다. 유인우주선에 우주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슈만주파수를 발생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전리층과 지표면 사이의 매 순간 1000회동안 발생하는 번개가 이 주파수를 유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이 슈만공명을 얘기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네. 그 날 이후 이 슈만주파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네. 물론 지난 10여년간 이 주파수가 꾸준히 올라가기는 했으나 최근 전리층이 얕아지면서 어제 자료로는 26Hz까지 상승했네. 이게 환각증세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

 

"지금 사람들은 정신이상이 온 것이 아니야. 슈만공명에 동조되어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게 된거라고 생각해. 사람의 뇌파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알파파와 베타파 정도는 이해할 거라 생각하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의식상태가 베타파에 머물러 있지. 그 주파수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13Hz~100Hz정도 되네. 알파파의 주파수를 알고 있나?"

 

"네. 7~13Hz 아닙니까? 어? 혹시 이거... 제가 생각하는 그 것... 이럴수가 아냐.. 그럴리가 없어요"

 

"아마 맞을 걸세. 알파파는 숙면을 취하거나 깊은 명상 상태에서 발생되지. 난 이 명상상태가 슈만공명이랑 관련있지 않나 싶어. 그런데 슈만주파수가 올라간다면 일반적인 의식상태가 명상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지. 그래서 평소 뇌파의 활동이 적은 사람들 부터 이런 증세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지금 꿈 같은 상태에 빠져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계산대로라면 지금 전리층은 예전보다 88%정도 사라졌을거야. 그럼 1시간정도 후 슈만공명은 46Hz까지 올라가네. 내가 혹시 말을 안하거든 나도 공명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게나. 소피스트군. 맘을 편하게 갖게. 피할 수 없어"

 

"김박사님도 이걸 믿으시나요?"

 

김박사는 대답이 없었다.

 

"김박사님!"

"김박사님!"

"설마.. 우교수님. 김박사에게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모니터는 멈춰있었다.

 

"우교수님?"

 

우교수도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

 

내 심장박동이 이상할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두근.

 

앞이 보이지 않는다.

 

두근.

 

모든 감각기관보다 심장의 박동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아니. 이건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심장 박동 그 자체의 느낌이다. 내 몸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내 편안함을 느낀다. 내 앞의 모니터가 사라지고 해변이 보인다. 아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난 해변에 있다.

이내 아마존의 밀림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식물들과 동물들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 그것이 느껴진다. 우교수님이나 김박사의 박동도 느껴진다.

아니다. 그 박동은 지구의 박동이다. 내 모든 세포와 감각기관이 그걸 느낀다.

 

두근.

 

생각은 모든 세포와 공명한다

세포는 뇌와 공명한다

뇌는 심장과 공명한다

심장은 지구와 공명한다

지구는 태양과 공명한다

태양은 은하와 공명한다

은하는 온우주와 공명한다

 

아포칼립스.

이건 종말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나와 같이 공명한다. 지구란 이런 존재였다. 설명하지 못하는 편안함.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느낀 그 박동. 내 생각은 현실이다. 아니 처음부터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현실이 아니였을지 모른다. 지금 이 것이 진실이였다. 내가 느낀 현실은 한낮 꿈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현실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꿈을 꾼 것이고 그 꿈을 현실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냥 존재하는 지구였다.

 

존재 그 자체이다. 생각 그 자체이다. 의식 그 자체이다.

 

두근.

 

 

끝.